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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지켜본 KTX 승무원들의 6년간의 이야기
    시사 2010. 8. 26. 22:02



    우리나라에도 고속 철도가 들어온지 벌써 6년이 지났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속도와 항공기내 서비스에 뒤지지 않을 만한 서비스를 앞세우며 '땅의 비행기 KTX'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KTX가 항공사 못지 않은 서비스를 하겠다며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KTX 여승무원 채용이었다. 이때 뉴스를 통해 들은 바로는 그 경쟁률이 수백대 일에 다다랐다.

    승무원들은 입사 당시인 2004년 3월 코레일이 고객서비스 업무를 위탁한 홍익회 소속으로 일하게 된다. 그런데 홍익회는 2004년 12월 승무원들의 소속을 한국철도유통으로 변경했고, 2005년 12월 한국철도유통은 KTX 관광레저에 승무원들을 다시 위탁한다. 

    이때 부터 일부 승무원들은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기 시작했다. 파업을 시작하자 코레일은 2006년 5월 승무원 중 복직하지 않은 사람들을 해고하기 시작했다.

    내가 승무원들의 파업을 처음 본 것도 2006년 이다.
     
    2006년 12월 경의선 전철 연장 개통식 취재를 나갔을때다. 경기도 의정부까지만 연결돼 있던 전철 1호선이 경기도 동두천까지 연장되는 개통식 당일 난 그들을 처음 봤다.


    당시 건교부 장관이었던 현 민주당 이용섭 의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이 커팅테잎을 자르려 할 때다. 2명의 승무원들이 현수막을 펼치고 "해고 철회....."라는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한체 모두 체포돼 어디론가 끌려나가는 모습이 나의 기억 속 KTX 여승무원들의 첫 모습이었다.

    이때만 해도 내 인식은 "왜 공사 소속이 아니면서 공사 소속으로 복직시켜 달라는 말인가. 좀 억지가 있다"고 생각 했었다.

    당시엔 그랬었다. 여승무원들은 처음 계약당시에도 코레일이 아닌 홍익회 소속으로 들어 왔기에 코레일의 직접 고용은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했다.

    이후 그런 생각들은 많이 바뀌었지만...아무튼 당시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후 이상수 노동부 장관, 이철 사장 등이 승무원들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승무원들의 직접 고용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KTX 승무원들이 점점 잊혀져 갈때쯤인 2008년 8월 27일.
     
    나는 그들을 서울역 뒤 40M 조명탑에서 다시 만났다. 한 여름 땡볕에서 50~60명의 승무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었고, 40미터 철탑위에는 승무원 3명이 올라가 있었다. 

    나는 왜 위험한 철탑까지 올라갔느냐? 한 여름이고, 탈진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데...라고 물었다.



    당시 부산 KTX 열차 대표 박미경씨는 “3년동안 농성을 해왔는데 철도공사는 관심이 없다. 그 동안 농성장으로 사용하던 역에서도 모두 쫓겨났다. 더 이상 이 땅위에는 설 곳이 없어서 고공농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런 극단적인 농성은 우리도 원치 않지만 철도공사 측의 무성이한 교섭이 우리를 여기까지 몰고 왔다”고 말했다.

    또 오늘 승소를 받아낸 오미선 씨의 인터뷰도 했었다. 오씨는 "정규직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었다.

    결국 1심 법원은 오늘 오미선씨와 33명의 승무원들의 복직을 받아 들였고 그 동안 밀린 임금까지 모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나는 이번 판결이 반갑다. 그 동안 아기 엄마가 된 승무원들에게 희망을 주는 판결이라는 것과 그간의 투쟁의 결실, 그리고 파견직에 대한 불법성을 가르는 상징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 동안 기업들은 기업의 직접 고용대신 자회사 등에 파견 또는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권익을 해쳐왔고, 노동법을 교묘하게 피해왔다.


    이번 판결은 이러한 기업들의 잘못된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기에 앞으로 노동자들의 권리와 잘못된 파견 문화가 조금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처음엔 3백여명이 넘는 승무원들이 파업을 했지만, 이후 사직한 사람,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청업체에 들어간 사람을 빼고 30여명만이 남아 끝까지 싸웠고 결국 오늘의 판결을 받아냈다.

    30여명의 승무원들은 5년이 넘는 끈질긴 투쟁과 법정 싸움으로 우리나라의 기업 문화가 바뀔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물론 앞으로 고법, 대법까지 코레일은 당연히 항소할 것이기에 KTX 여승무원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파견근로자들의 최종 승리는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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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붙임.

    이후 결국 대법원은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었고 여전히 재판은 진행 중이다. 대법 판결 이후 안타깝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승무원도 생겨났다. 비정규직 문제가 발생한지 10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KTX 사건. 이들이 웃을수 있는 날이 꼭 오기를...


    미디어오늘 기사를 덧붙인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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