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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배 의무소방대원의 순직, 그리고 10년전 그곳
    시사 2012. 12. 29. 17:33




    겨울은 화재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계절이자 소방관들이 가장 힘들고 바쁜 계절입니다.


    오늘 우연히 포털 메인뉴스를 보다 한 의무소방대원의 순직 기사를 접하게 됐습니다.


    기사를 읽다보니 제가 딱 10년 전인 2002년 의무소방대원으로 근무했던 고양시에서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이번에 사고를 당한 대원은 일산소방서 소속입니다. 10년 전에는 일산구에 소방서가 없었기 때문에 고양소방서가 일산구까지 모두 담당했으니 오늘 순직한 대원은 제 후배 의무소방대원이 되는 겁니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때 저는 논산훈련소와 중앙소방학교를 거져 고양소방서에 첫 배치를 받았습니다.



    고양시는 인구가 많을 뿐더러 북한산과 자유로를 끼고 있어 구조구급 사건은 물론, 화훼단지와 가구 단지가 위치해 화재도 빈번했습니다. 하루에도 3~4건의 출동은 기본이고 한번 출동을 나가면 짧게는 2~3시간, 많게는 2~3일씩 불을 껐던 적도 있습니다. 공장이나 가구 단지에서 불이 나면 속불까지 수작업으로 불씨를 모두 드러내야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고양소방서에 의무소방대는 저와 동기 5명이 첫 배치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저희는 소방관들과 큰 구별없이 출동을 하고 생활했습니다. 당시에는 체계가 잡히지 않아 소방관들도 저희를 동생처럼 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출동을 다니다 보니 입대 전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충격적이게도 소방관들이 입고 있는 화재진압복이 방화가 되지 않는 방수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물은 들어오지 않지만 불에는 어김없이 타는 굳이 비교하자면 등산복(?)과 다르지 않은  옷이었던 겁니다.


    제가 입대하기 1년 전 서울 서대문구 홍재동에서 화재 진압 중이던 소방관 6명이 순직하는 사고가 있어 소방관들에 대한 예산과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습니다. 그래서 의무소방대가 설립됐고, 방화복이 지급됐습니다. 하지만 사실 의무소방대는 2년여가 지나면 나가는 인력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소방관들 보다 전문성이 떨어집니다. 또 방화복 역시 당연히 지급되야 하는 필수적 장비였습니다. 하지만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해준 것이라고는 이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


    하지만 이마저 물량이 한정돼 의무소방인 저희들 몫은 없었습니다. 결국 저희는 소방관들이 입던 방수복을 입고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공기호흡기 역시 없어 먼지를 걸러내는 3M 방진마스크를 쓰고 화마와 싸워야 했습니다. 


    물론 이는 소방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기호흡기는 2~30분만 쓰고 나면 다시 공기통을 바꿔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게다가 무겁기까지했습니다. 또 겨울철 같은 경우 하루에도 3~4건 이상의 화재가 발생하기 때문에 공기호흡기를 매번 사용하면 공기통 충전에만 꽤 긴 시간이 소모되기 때문에 사실 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소방차 역시 폐차 시기가 지났지만 예산이 없어 차량을 바꾸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화재 발생시 소방대는 지휘차(지휘관 및 화재조사관이 탑승한 차), 펌프차(화재진압), 탱크차(급수), 화학차(유류화재 및 급수), 굴절차(저층건물), 조연차(조명 및 연기 배출), 구급차(환자이송), 구조차(인명구조대원) 등이 기본으로 출동을 하지만 인원이 부족해 이중 조연차나 굴절차는 출동하지 못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충격적이었던 현실도 시간이 지나며 차츰 잊혀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2004년 여름 전역을 했습니다. 앞으로 소방현실이 나아지길 바라며.


    하지만 전역 이후 매년 소방관 순직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의무소방관 순직 소식도 끊이지 않고 들려옵니다. 결국 오늘은 제가 근무하던 소방서에서 후배 의무소방대원이 순직했다는 소식까지 듣고야 말았습니다.


    경찰이나 검찰은 언제나 주목받아 왔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권력과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방관들은 그저 3교대 근무와 낡은 소방차 교체, 그리고 부족한 소방인력을 늘려달라고 말할 뿐이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10년전 제가 의무소방대원으로 근무했을때와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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