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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엠바고 함정'에 빠진 기자들, 그리고 신문의 '추락'
    시사 2015. 5. 18. 17:52




    인터넷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 신문은 정보의 바다였습니다. 매일 아침 집에 도착하는 신문을 통해 그날의 이슈를 확인하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2000년대 이전만 해도 기자들은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엠바고라는 이름으로 기사를 묶어두기도 했었습니다. 또 기사가 많다는 이유로 오늘 나온 소식을 하루 뒤나 일주일 뒤로 미뤄두기도 했답니다. 물론 직접 경험담은 아닙니다. 모두 수 십년 이 바닥에서 일한 선배들의 이야기입니다.


    기자들은 '기자단'이란 집단을 만들어 취재를 이어가고, 기자단에 가입하지 못한 언론사는 각종 행사나 간담회에 배제되기도 합니다. 소위 기득권을 가진 주요매체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것이 기자단이고 이에 가입하고자 하는 언론사들은 자신들 스스로 규정을 만들어 선별적 가입을 받아 주고 있습니다. 취재편의를 위한 것이라 하지만 제가 보기엔 그저 스스로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만 보입니다. 기자단과 관련해서는 TV조선의 경찰청 출입기자단 사건이 유명합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6&aid=0000070334)


    엠바고는 말 그대로 지켜야 할 '가치'가 존재할 때 이뤄지지만, 이 엠바고라는 것이 온라인매체가 많아진 뒤에는 '보도담합'으로 변질됐습니다. 굳이 엠바고를 걸지 않아도 되는 보도자료에까지 보도시점을 붙입니다. 기자단에 가입된 매체들은 이 규정을 따라야 하고, 만약 이를 깨면 기자실 출입금지와 자료 제공금지 등 엄청난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이런 규정도 모두 기자단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최근 포털을 통한 기사 유통이 기사의 주요 판로가 되면서 다음날까지 신문이 기다렸다 정보를 접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 PC와 모바일을 통해 다음날 나올 신문 기사를 모두 읽는 것이 당연시 됐습니다. 또 포털뿐 아니라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도 기사는 넘쳐납니다. 공짜로 나눠주는 무가지가 몰락한데도 어제 이미 본 뉴스들만 있는 신문을 힘들게 들고다니며 볼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바일만 열면 실시간 기사들이 올라오니 새로운 뉴스를 읽기에도 현대인은 바쁩니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대부분의 언론은 온라인과 모바일 대응을 최우선하며 다음날 종이신문보다 포털에 먼저 기사를 올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엠바고의 함정에 빠진 기자들이 많습니다. 또 지면이 온라인보다 가치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넘쳐납니다. 인터넷 매체가 처음 생겼을때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지면 매체들은 온라인매체는 인정하지 못한다면서 이 매체의 취재를 방해했습니다. 결국 이 매체는 주간지를 제작하기에 이르렀고, 이때서야 국회 행사에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구태가 오늘 한 지인의 페이스북을 보고 다시 떠올랐습니다. 지인의 페이스북에는 오늘 열린 행사 사진과 설명이 올라왔습니다.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라 저 역시 관심을 두고 글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댓글 아랫부분에 한 지역매체의 기자가 항의성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유인 즉, 보도자료를 기사화 하기전 페이스북에 사진과 기사형식의 글을 올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내가 올리기도 전에 니가 뭔데 왜 독자들에게 이 정보를 공개하느냐"는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항의였습니다. 요즘도 이런 인식을 가진 기자가 있다니 댓글을 읽고도 놀랍습니다. 관련 행사사진과 보도자료 내용을 올린 것에 대한 항의가 정당한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보도자료에 사진까지 제공해준 당사자에게 취재편의를 제공받았으니 감사의 뜻을 표하지는 못할 망정 항의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습니다. 


    물론 보도자료를 보낸 분은 댓글로 양해의 뜻을 구했습니다. 또 보도자료는 오전일찍 보냈고, 페이스북에 사진과 글이 올라온 것은 정오가 다된 시간이었습니다. 메일함을 몇 시간째 확인하지 않은  창피함보다 페이스북에서 해당 내용을 본 것이 더 화가 난다는 겁니다.


    이런 일은 흔합니다. 정부 기관은 언제나 보도자료를 배포할때 보도일자와 시간을 정합니다. 별것 아닌 자료에 조차 엠바고를 붙이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이는 정부부처와 기자단 사이의 편의를 위해서 입니다. 한꺼번에 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오면 기자들이 힘들다는 이유와, 주요 소식의 경우 다음날 조간신문에 들어가야 하니 온라인은 조간신문 발생 이후에 올려 달라는 것이죠. 여전히 정부기관은 온라인보다 지면 위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온라인 기사는 스크랩하지 않거나 보고하지 않는 홍보실도 있습니다.


    심한 곳은 비기자단에게는 보도자료 조차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정부는 물론 이런 '악습'을 이제 기업까지 따라하고 있습니다. 모두 기업과 기자들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기득권 지키기에 따른 것입니다. 온라인에 정부 정책과 주요 기업 소식이 신문보다 먼저 나올 경우 신문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더욱 떨어질테니까요.


    이런 언론과 기자들의 기득권 지키기와 ‘집단화’ 속에도 신문의 영향력은 나날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또 기자들은 온라인 기사를 가벼이 여겨 쓰려고 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기사를 쓰면 기자의 가버치가 떨어진다고 착각하거나 지면 기사를 쓸 시간도 없는데, 어찌 온라인 기사까지 쓸 수 있느냐며 반문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자들은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공룡처럼 곧 멸종될 것 입니다.


    이제 편의를 위해, 또는 관습이란 이유로 '엠바고'를 남발하는 대신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더 빠르고 다양하게, 더 많은 독자에게 읽힐 수 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것이 언론 생존을 위한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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